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삼성 라이온즈/사건사고 (문단 편집) === [[이만수]] 홀대, 은퇴 강요 및 코치 계약 파기 논란 === 이만수는 기량이 쇠퇴하지 않는 한 40살까지 뛰고 싶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이만수의 기량은 이미 1993년 이후부터 쇠퇴하고 있었고[* 1993년 이후 주 포지션인 포수로 거의 출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기회조차 못 받은 걸로 알려져 있으나 지명타자나 대타 등으로는 나름 기회를 얻었다. 의외로 [[백인천]] 감독도 리빌딩을 위해 의도적으로 노장들을 배척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수에게는 기회를 꽤 줬다.] 삼성 구단은 이만수가 37살 때인 1995년, 미국 코치연수 보장을 조건으로 은퇴를 종용했다. 하지만 이만수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하며 구단의 은퇴 및 코치연수 제안을 거절하고 다음해에도 선수로 뛰었다. 이때부터 삼성 구단은 이만수를 눈엣가시로 여기기 시작한다. 1995 시즌 이후 삼성은 이만수를 후보선수로 앉혀놓기만 하는 등 은퇴를 압박했다. 1996 시즌이 끝나고 삼성은 이만수에게 플레잉코치를 제의했지만 역시 이만수는 거절했다. 결국 1997 시즌 종료 후 삼성 구단은 사전동의없이 이만수를 방출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야구선수를 삼성에서는 영구결번은 커녕, 은퇴식 한 번 없이 자유계약선수로 방출한다는 전화 한통으로 결별했다. 삼성에서 방출당한 이만수는 타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는 시도 전혀 없이 곧바로 은퇴를 결심했다. 당시 PC 통신 커뮤니티에 이만수 본인이 직접 자신이 방출 및 은퇴 결심, 그리고 유학을 가겠다는 계획을 알리는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이미 삼성에서 방출당한 후였지만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 올림'이라고 쓰며 글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 이만수는 당시 관례와 달리 삼성으로부터 일체의 유학 경비를 지원받지 못하고, 가족들을 한국에 둔 채 혼자서 자비로 미국 코치연수를 떠났다. 1998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A 팀에서 코치 연수를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조촐한 은퇴식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만수는 무릎팍 도사에 나와 당시를 회고하면서 “95년부터 벤치 생활을 하면서 젊은 세대와의 교체를 위해 구단에서 은퇴를 종용했다. 좋은 조건으로 미국에 공부하러 가라는 조건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나이 30만 넘으면 노장이 되고, 35이면 퇴물취급 받는 국내 야구계 풍토를 바꾸고 싶었다. 40이 되어도 야구를 할 수 있는 풍토로 바꾸기 위해 계속 (선수 생활을) 하다보니 구단과 마찰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벤치 생활을 하다 1997년 은퇴를 했다. 하지만 구단과 사전합의가 안 된 것이었다. 한 마디로 짤린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방출, 좋게 말하면 명예퇴직이다.”고 밝혔다. 이만수는“너무 충격이 컸고 준비를 못한 상태였다. 한국에 있는 것이 창피하더라. 팬들 보기도 부끄럽고 16년간 한 팀이었던 구단에 서운함 감정도 있었다.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정상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진 기분을 견딜 수 없었고, 가족들도 상처를 받았다. 나도 오랜기간 구단생활을 했던 만큼 가족들을 불러 멋지게 은퇴식을 하고 싶었는데…. 결국 도망가다시피 미국을 갔다. 그런데 (미국생활이) 죽기보다 싫더라.”고 말했다. 그나마 삼성은 팀 레전드인 이만수를 기리는 의미로 훗날 그의 등번호 2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지만, 이마저도 그가 은퇴한 지 6년이나 지난 2003년 6월에야 이뤄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3년 시즌 종료 후, 삼성은 당시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였던 이만수에게 코치직을 제안하면서 국내 복귀를 타진하였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코치로 간신히 자리를 잡았던 이만수는 이 때 삼성의 코치 제안을 받아들이고 주저없이 화이트삭스에 사표를 낸 뒤 집과 차를 모두 처분하고 비행기표까지 발권해두는 등 귀국 준비를 했으나, 돌연 삼성 측에서 없던 일로 하자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버렸다.''' 졸지에 오갈 곳이 없어진 이만수에게 다시 손을 내민 쪽은 [[시카고 화이트삭스]]. 계약관계에 냉정한 미국 사회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사정을 전해들은 화이트삭스 구단이 다시 재계약을 해줘서 다행이지 이만수 입장에서는 친정 팀 삼성 때문에 하마터면 지도자 경력까지 망칠 뻔한 사건이었다.[* 이만수 본인에 의하면 비슷한 시기 KBO의 다른 팀에서도 국내 복귀 및 코치 제안이 들어왔는데 삼성의 코치 제안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로서 이만수는 2006년까지 화이트삭스에 몸담으면서 [[2005년 월드 시리즈]] 우승도 맛봤다. 한편 이만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제는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마음을 좋았던 추억으로 마음속에 접고 싶습니다. 프렌차이즈 스타이기 때문에 불러야 하고, 가야하는 그런 부담스러운 관계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프로야구를 선도할 진정한 명문구단이 되기를 먼곳에서 성원하는 것으로 제 마음을 표현합니다."''' 라며 삼성 구단에 대한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